XY 블로그 보드

중학교에 와서 처음 받아본 ‘A’
미술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밤이 깊도록 뿌리고, 칠하고, 불고, 찢어 붙이고 온 방안이 난장판이 되는 줄 모르고 열중하였다. 작품을 마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는데 머리가 띵하고, 천정이 빙빙 도는 것 같은 현기증이 느껴졌다. 이렇게 하찮은 작품을 만드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이름난 화가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서양의 18세기는 르네상스 이후 예술 특히 미술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세잔느, 고갱 등이 그렇다. 이들은 미술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몰두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없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예술인이 되었다. 그중 한 사람이 고흐이다. 고흐하면 으레 강렬한 색상의『까마귀가 나는 밀밭』이 생각난다. 고흐도 여느 화가들처럼 가난하게 생을 마쳤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돈이 많고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호화스럽게 살 수 있었다면 지금의 명작들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위대한 작가들의 생애를 살펴보면 극한적인 상황에서 자신과 싸움을 이겨내기 위한 수단으로 작품에 집중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네덜란드 브라반트 지방에서 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집안의 특징대로 붉은 머리였으며 광대뼈가 나오고 말라 괴기한 생김새였다. 그래서 기숙학교에 들어가서도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혼자서 스케치 연습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얼마나 눈빛이 강했는지 애들이 놀리다가도 그 눈빛만 보면 으레 겁을 먹고 움츠렸다. 고흐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지만 가족들에게 이해를 받지 못했을 뿐만아니라 할머니에게 구박을 받아 평생 특이한 성격대로 살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고흐가 그림에서만은 남다르게 소질이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는 이미 그림을 그리던 삼촌집으로 동생 테오와 함께 보내 그림 공부를 시켰다. 이율곡에게 신사임당과 같은 어머니가 있었다면 고흐에게는 고흐를 알아주는 아버지가 있었던 것이다.
고흐는 즐겁게 큰아버지 집으로 향했다. 큰아버지는 그림을 팔아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 물론 고흐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지만 돈이 많으면서도 자신의 가난한 형제들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장사에만 눈이 멀어 있었으므로 고흐의 삶에 그다지 영향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단지 고흐에게 있어서 큰아버지의 존재는 먹고 살아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고흐에게 정신적 지주는 동생 테오였다. 테오만이 고흐의 그림을 이해하고 옆에 있어준 정신적 동반자였던 것이다.
한편, 고흐는 친절한 목사의 도움을 받아 전도사 자격으로 한 탄광촌으로 갔다. 목사는 고흐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고 친절히 대해 주었다. 고흐는 그 고마움으로 열심히 전도를 하고 남는 시간엔 탄광촌 사람들을 모델로 삼아 스케치 연습을 했다. 그러나 어느날 사장의 관심 부족으로 탄광 사고가 일어나자 광부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고흐는 이 폭동을 진정시키고 사장에게 사정을 말하자 사장은 도리어 고발을 해 전도사 자격까지 박탈당했다. 분명히 억울한 일이었다. 고흐는 이 일로 상심이 컸지만 동생 테오의 격려 편지를 받고 힘을 내어 탄광촌에 계속 머무르며 스케치 연습을 계속했다. 그 무렵 테오는 그림 장사로 생활이 넉넉해졌다. 테오는 형 고흐를 불러 파리의 훌륭한 화가에게 배우도록 하였다. 이제 고흐는 뛰어난 그림 솜씨를 발휘하여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지만 우중충한 색깔로 그렸기 때문에 그림대회에서 인정을 받은 일이 거의 없었다. 그 후 고흐는 자신이 좋아하는 해바라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 때 고갱을 만났다. 고흐는 고갱을 불러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며 평가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고갱은 자꾸만 왼쪽 귀가 이상하다고 했다. 고흐는 화가 났다. 어쩌면 자존심이 상했는지도 모르겠다. 급기야 자신의 왼쪽 귀를 잘라내었다. 한편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는 고흐의 그림에 대한 강한 집착과 애정을 나타내는 한 대목이다. 하지만 이 일로 건강이 쇠약해지고 정신이상 증세도 심해지게 되어 권총으로 자신을 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다행히 심장을 빗겨나가긴 했지만 거의 사망 직전에 이르게 되어 테오가 지켜보는 가운데 최선의 방법을 모두 동원한 치료에도 불구하고 천재 화가 고흐는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고흐는 좋아하는 해바라기 옆에 묻혔다.
고흐는 정신적인 병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은 스스로에게 죄를 안겨준 자살이라는 극한적인 방법으로 삶을 마감했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아련하고 치열하게 헸을까? 무엇이 그를 죽게 했을까? 예술에 대한 열정이 다한 상황에서 그가 선택했던 것이 바로 그런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과연 이를 아름다운 죽음이라 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어떤 일에 모든 열정을 아낌없이 바치고 남는 힘이 없을 때 자신을 이겨낼 수 없는 지경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 인터넷 뉴스를 보면 간간이 연예인, 유명인사, 뿐만아니라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자살 소식을 접한다. 그러나 어떤 의미로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은 용납되거나 미화될 수없는 죄라고 생각한다.
오늘 나는 예술가 고흐를 읽으면서 잘라진 고흐의 귀는 열정으로 붙여줄 수 있는 일이라지만, 그의 죽음은 결코 미화할 수 없는 안타까운 일이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