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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고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난세에 영웅이었던 사람은 태평성대에 역적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연개소문은 영웅이었던 것이다.
호전적인 황제들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던 수·당 시기. 고구려로서는 난세라면 난세라 할 수 있던 때이다. 이 시기, 시대는 연개소문이라는 구국영웅을 고구려로 내려 보낸다. 이 영웅은 강력한 중앙집권 독재를 실시한다. 나라의 규모 차이에서 알 수 있듯이 상대가 되지 않던 당과의 싸움에서 연이어 승리하며 고구려의 명맥을 유지하던 연개소문의 이 독재는 과연 고구려에게 얼마만큼의 허와 실을 안겨주었는가? 결과적으로 연개소문의 독재는 고구려에게는 성공을 가장한 실패였다. 비록 고구려 멸망에 이르기까지 중간과정은 연개소문에 의해 모두 승리했지만 결국에는 연개소문에 의해 실패했기 때문이다.
4~5일 대조영 방송을 보면 당의 2차 침입으로 평양성이 위기에 놓이자 보장왕은 모든 일을 연개소문에게 맡겨버린다. 연개소문의 독재 체계인 것이다. 물론 그 덕분에 연개소문은 평양성을 굳건히 지켜내며 당의 2차 침입 또한 막아낼 것이다. 혼자서 전 군대를 지휘하고 반대 귀족 세력들의 화친 제의도 한 마디로 잘라버릴 수 있는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기서 잠시 시대를 앞서 가 보면 3차 고당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연개소문이 병상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 그 후 바로 남생, 남건, 남산 형제의 권력다툼이 시작된다. 생전 연개소문이 아들들의 사이가 안 좋은 것을 알고 자신의 최고 권력을 나누어 분배해준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그 결과 남생이 남건에게 밀려나 남생은 국내성으로 들어가 소외된 귀족들과 뜻을 모으고 당나라에게까지 구원을 요청한다. 남건이 평양성에서 당나라, 신라 군대를 잘 막지만 결국에는 내분으로 함락되게 된다. 연개소문 사후에 일단락되어버린 전쟁이 왜 연개소문의 독재 때문인지 차례차례 알아보겠다.
첫째로 연개소문의 후계자 문제 처리 미흡이다. 여러 독재자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이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에게는 그 권력을 갈망하며 모이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들은 권력을 절대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 하지 않는다. 연개소문은 이를 알고 자신의 아들들 중 한 명을 정해서 그에게 절대적 권력을 넘겨줬어야 했다. 아버지 연개소문을 보며 생긴 권력욕들로 가득 찬 자식들에게 우애가 남아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또한, 권력자가 어떤 집단의 이익을 가로막고 손해를 끼쳤을 경우 생기게 되는 그 반대 세력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것이다. 연개소문은 영류왕을 죽이고 보장왕을 죽이면서 바로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그 반대자들이 크게 나서지 못했지만 그 아들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날뛰고 있을 때 이 때다 하며 뛰쳐나온 것이다.
결국 독재로 중간과정을 승리로 이끌 수는 있어도 마지막 순간까지 승리로 장식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독재의 허인 것이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한 가지 상상을 해보고 싶다. 과연 연개소문이라는 난세의 영웅이 등장하지 않고 평화를 바라는 왕과 평화를 바라는 신하들로만 이루어진 고구려라는 나라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었겠는지 말이다. 연개소문 때보다는 오래 남았을 것이다. 당나라에게 무릎을 꿇고 황실의 여자를 바치고 조공을 바치며 말이다. 그래서 연개소문이 고구려의 패망을 앞당긴 독재자이면서도 높게 평가되는 것이다. 패망을 앞당긴 근본적 장본인이기는 하지만 끝까지 고구려의 기상을 남긴 인물, 연개소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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